“은퇴하면 자녀 직장보험에 피부양자로 얹혀 평생 공짜로 병원 다녀야지.”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내년 7월부터 정부가 직장보험에 얹혀지는 피부양자 자격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전환되고, 재산·소득·자동차를 합쳐 적잖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피부양자 자격 강화는 최근 결정된 건 아니다. 지난 2014년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송파 세모녀 비극이 발단이었다. 당시 송파 세모녀는 건보료로만 월 5만원씩 내고 있었고 이를 개선해야 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내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변경되면 많은 은퇴자들이 재산 때문에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또 재산이 있기 때문에 비싼 건보료를 내게될 전망이다. /일러스트=박상훈
내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변경되면 많은 은퇴자들이 재산 때문에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또 재산이 있기 때문에 비싼 건보료를 내게될 전망이다. /일러스트=박상훈

이에 정부는 2017년 저소득층의 건보료 부담을 대폭 낮추는 대신, 고소득자와 자산가의 부담은 높이는 방식으로 건보료 부과 체계를 개편했다.

새 로드맵에 따르면, 내년 7월부터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은 3가지 허들을 모두 넘어야 유지할 수 있다. ①사업소득이 없어야 하고 ②합산소득은 연 2000만원 이하여야 하고 ③재산 과표는 3억6000만원 이하(3억6000만~9억원인 경우엔 연간 소득 1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단 하나라도 넘지 못하면 탈락이다.

‘연금 이야기’의 저자 차경수(투자자산운용사)씨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소득 없이 집만 한 채 갖고 있는 고령자도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죽는 그 순간까지 평생 내야 하는 건강보험은 ‘1가구 1건보료’ 시스템으로 점차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피부양자에서 탈락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울에 살고 있는 73세 은퇴 생활자 A씨의 실제 사례를 살펴 보자.

A씨는 작년 11월 건강보험공단에서 27만8860원이 찍힌 보험료 고지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집값이 올라 자녀 직장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에서 탈락했으니 11월부터 지역 가입자 자격으로 매달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아파트를 샀다 팔았다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34년 전에 처음 분양 받아 지금까지 쭉 보유하고 있고 자동차도 20년 넘게 타면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면서 “매달 받는 국민연금 68만원이 전부인데 월 건보료로 28만원을 내야 한다니 이건 고령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간접적인 살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은퇴 후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전부인 고령자에게 ‘집 있는 부자인데 건보료 쯤이야’라는 비난은 가혹하다.

“집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늙어서 돈 없으면 자녀한테 기대서 살라는 건데, (애들도) 손자들 키우느라 나를 도와줄 상황이 아닙니다. 건보공단에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규정이 그렇다고 무조건 내야 한다고 하네요. 60세만 되었어도 밖에 나가 아르바이트라도 할 텐데, 나이 들었다고 아무도 써주지 않는데...”

A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은 자산의 70%가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현금 흐름이 막힌 노후에 건보료 부담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내년 7월 피부양자 자격이 강화되면, 건보료 폭탄을 호소하는 은퇴 생활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내 부모, 내 배우자의 일이 될 수 있다. 내년 일인데 왜 벌써부터 신경써야 하냐고 생각했다간 후회하기 십상이다.

지난 2017년 정부는 건보료 체계 개편으로 59만명이 피부양자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집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에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피부양자 자격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 중 약 29%는 60대 이상 고령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4주년 성과 보고 대회에서 "건강보험이 코로나 방역의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든든하게 해줬다"며 '문재인 케어' 성과를 홍보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4주년 성과 보고 대회에서 "건강보험이 코로나 방역의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든든하게 해줬다"며 '문재인 케어' 성과를 홍보했다./연합뉴스

바늘문처럼 좁아지는 피부양자 자격,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통과할 수 있을까.

차경수씨는 “사업소득이 없어야 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재산과표 3억6000만원은 얼마를 뜻하는지 헷갈리기 쉬운데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정확히 뜻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3가지 허들 내용을 정리해 봤다.

①번 허들

사업소득은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로 나눠서 따져봐야 한다. 사업자 등록을 했다면 기본공제와 필요경비를 뺀 사업소득이 0원이어야 한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엔 사업 소득의 합계액이 연간 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차경수 전문가는 “사업자 등록은 주택임대 사업자 등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 징수 대상 사업소득을 말한다”면서 “일용 소득자의 경우 3.3% 소득세가 원천 징수되어 임금을 받는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②번 허들

합산소득은 2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합산소득엔 금융소득, 사업소득, 근로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이 포함된다. 현재 기준은 3400만원인데 대폭 낮아진다. 아마도 내년엔 2번 허들 때문에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는 연금 생활자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득은 예금 이자, 주식 배당 등이 해당된다(비과세, 분리과세 제외). 이때 예금 이자와 주식 배당으로 2001만원을 받았다면 2000만원을 넘은 1만원이 아니라 2001만원 전액이 보험료 부과 대상으로 잡히게 된다. 연금소득의 경우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빠진다.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은 피부양자 자격을 정할 땐 전액 포함이다.

만약 공무원연금으로 매달 170만원씩 받고 있다면 2000만원이 넘기 때문에 피부양자 탈락이다. 공적연금을 줄이긴 힘드니 금융소득이라도 비과세, 분리과세 계좌를 활용해 합산소득 합계를 낮춰야 한다. 만 65세 이상 고령자는 1인당 5000만원 한도로 비과세 종합 저축을 활용할 수 있고 ISA(종합자산관리계좌)도 200만원까지는 비과세, 그 이상 소득은 분리과세이므로 활용할 만하다.

③번 허들

재산은 과세표준 3억6000만원 이하(3억6000만~9억원인 경우엔 연간 소득 1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현재 과표 기준은 5억4000만원인데 낮아진다. 이때 과세표준은 아파트의 경우 공시가격의 60%다.

현재 시가 15억원짜리 아파트의 공시가격(현실화율 60%)은 9억원이고, 과세표준은 공시가격의 60%이므로 5억4000만원이다. 즉 시가 15억원인 아파트 보유자가 국민연금으로 매달 90만원씩 받고 있다면 현재는 피부양자 자격 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내년 7월 조건이 강화되면 탈락이다. 지역가입자가 되면 내야 할 보험료는 월 23만원이다.

문제는 정부가 현실화율을 9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가 7억원짜리 아파트만 있어도 피부양자 등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녀에게 일부 증여하면 과표를 줄여서 피부양자 자격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증여세 등 부담이 생기므로 쉽지 않다.